우주는 공허하고도 방대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 역시 그렇지요. 컨텐츠는 공허하고, 앞으로 나올 dlc 거리들은 방대하니까요.

스텔라리스는 뛰어난 게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들은 그 유명한 패러독스사이고, 개발자들이 게임이 발매되기 전 트위치에서 보여준 게임 플레이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요. 게임의 발매일이 되고 이 게임을 처음 켜본 저는, 이전까지 패러독스사의 게임들을 접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텔라리스의 우주적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미개척된 우주의 항성계 곳곳에 과학선과 건설선들을 보내며 점점 인류 제국의 영토를 넓혀가고, 그러는 와중에 만나는 여러 고대 외계인들의 흔적들.. 그야말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기분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반경이 지구에만 국한되었던 인간들이 마치 바퀴벌레처럼 우주의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어느정도 어긋난 쾌감도 느꼈고요. 하지만 넓디 넓은 우주공간이 점점 여러 제국들로 들어차고 절대 생길 리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국경선들이 이곳저곳에 쳐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던 과거의 제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무척이나 실망한 현재의 제 모습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드러나는 스텔라리스의 수많은 단점들에 파묻혀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제 모습을 말이에요. 초반부와는 달리, 중-후반부는 무척이나 지루합니다. 수많은 자잘한 이유들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큰 단점들을 뽑자면 우선 첫 번째로 ai가 무척이나 이상합니다. 문명 시리즈의 ai들을 많은 사람들은 흔히 '참피 외교를 한다'라고 표현했었지만, 스텔라리스의 ai들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합니다. 또 이 게임에는 직접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행성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코어 행성수'를 넘는 수의 행성들을 직접 통치하려고 하면 엄청난 불이익이 따라오지요.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중반부부터는 특정 행성들을 묶어 '섹터'로 지정하여 ai에게 그 통제권을 맡기게 됩니다. 요컨대 자동관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섹터를 통제하는 ai는 정말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여도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노예더러 연구를 하라고 하고, 노예가 아닌 시민더러 광산에서 미네랄을 캐라고 합니다. 굉장히 발전된 문명에 구시대적인 노예제를 도입한 플레이어에 대해 ai가 링컨의 유지를 이어받아 항의라도 하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섹터 ai의 한심함은 이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변명을 할 수도 없겠군요. 그러니 자연히 코어 행성수를 늘리는 연구가 뜨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이 코어 행성수를 늘려주는 연구는 정말 10판 하면 한 번 뜰까말까할 정도로 무척이나 희소한 확률로 뜹니다. 어째서일까요? 보통 게임사들은 게임에 크나큰 결점이 하나 있다면 그 결점을 운적 요소로 때우려고 하거나 그러지 않나요? 무슨 '무척이나 희귀한 아이템이 등장하는 상자!' 같은 것들로 말입니다. 하지만 패러독스사는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플레이어를 놀리듯 '섹터를 우리 회사가 설계한 ai에게 맡기지 않고서는 못 베길걸!' 하며 플레이어에게 대놓고 똥을 선사합니다. 순도 100%의 똥 그 자체를 말이에요. 플레이어가 어찌할 수 없는, 순전히 게임적 결함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 때문에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제국을 보고 있으면은 정말 슬픕니다. 물론 다른 제국들의 통치자들 역시 더 나을 것도 없는 수준의 ai들이라 초반부를 넘기면 게임에서 패배하기란 무척 어렵지만요. 두 번째 결점으로는 스텔라리스의 중후반부에는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하였듯 스텔라리스의 초반부는 순전히 낯선 우주를 유영하고 그 자리를 거쳐간 수많은 외계인들의 흔적을 살피는, 말하자면 모험가적인 재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을 모험가와 개척자들로 만들고는 수많은 이벤트들로 우리들이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중후반부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후반부의 위기란 굉장히 가소로워서 이미 막강한 제국을 세운 플레이어들에게는 개미 한 마리가 저 멀리서 날아올 때의 위기감 정도만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미는 계속해서 따끔따끔하게만 만들 뿐 이렇다 할 위기감을 형성하지는 못합니다. 즉 스텔라리스의 후반 위기라는 것도 그저 처리하기가 짜증날 뿐 딱히 재미가 있다거나 아니면 진짜 위기같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전투. 전투가 굉장히 유치합니다. 저는 비주얼적인 단조로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텔라리스의 전투는 그저 누가누가 더 많은 전투함을 가지고 있나 싸움에 불과합니다. 마치 어린 유치원생들이 누가누가 장난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나 자랑하는 것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무기간의 상성같은 것은 거의 존재하나마나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플레이어들은 여러 ai들과 동맹을 맺고 더 나아가 연방을 만들어서는 다른 ai들을 차근차근히 짓밟아야 하는데, 아까 말했듯 이 ai들의 수준은 정말 문명 시리즈의 ai들만도 못하여 전쟁을 벌일 때에도 짜증만을 유발합니다. 나는 함대를 이곳저곳으로 보내는 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수도에 함선들을 묵혀두고서는 전쟁을 구경하기만 합니다. ai를 속국으로 만든 뒤에 다른 ai와 전쟁을 벌일 때에도 그저 내 주력 함대만을 쫓아다니고요.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유닛들을 조종하기는 귀찮으니 제 마린 한 부대에다가 랠리 포인트를 찍어놓은 친구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전쟁이라는 것도 그저 이리저리 도망치는 상대 ai의 주력함대를 쫓아다니는, 말하자면 술래잡기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스텔라리스는 좋은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짜증만을 유발하는 게임이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스텔라리스의 초반부에 시간을 너무나도 많이 빼앗겨 버려서 환불할 시기조차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5월과 6월, 그리고 7월 패치가 업데이트가 되고 한 dlc 50개 정도는 발매된 뒤 묶음으로 할인하여 판매될 때에 구매했어야 되는 물건을 저는 미완성품인 채로 나왔을 때에 구매해버렸습니다. 패러독스사 게임이 원래 이렇다고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저 패러독스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더 있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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